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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탐방기

크리스마스트리 문화 축제가 열리는 ‘광복동’ 일대 둘러보기

부산 광복동에는 크리스마스트리 문화축제가 열린다. 거리에는 수많은 트리가 밝게 빛나고 그 주변으로 공중에 걸린 색색의 조명들이 화려함을 더한다.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장식물로 가득 채워진 광복동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겨울의 매서운 바람도 잊은 채로 크리스마스트리에 빠져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연말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축제. 사실 트리 축제가 열리는 광복동과 그 일대는 오래 전, 그리 화려하고, 따뜻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커다란 트리 모형이 광복로 중심에 우뚝 솟아 밝게 빛날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11, 이제 막 쌀쌀해지기 시작한 늦가을이지만, 광복로는 이미 크리스마스트리 축제를 준비하는 손길들로 바빠 보였다. 길 위로 설치된 구조물, 색색의 작은 전구로 감싸진 가로수들이 아직 불을 밝히지 않았지만, 조형물이 설치된 것만으로도 연말이 성큼 다가온 듯했다.

 

이처럼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화려한 트리 장식으로 꾸며지고, 많은 사랑을 받는 관광지 중 하나인 광복동. 광복동이라는 지명은 8.15 광복 이후 조국의 광복을 기리는 뜻에서 지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광복의 기쁨은 얼마가지 못했다. 19506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 부산이 임시수도로 지정되고,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향했다.

 

광복동이 속해있는 부산 중구는 피난시절 교통, 행정의 중심지였다. 그래서 인지 광복동을 중심으로 어려웠던 그 시절의 애환이 느껴지는 곳들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 중 피난민의 애환을 상징하는 ‘40계단’, 그리고 영화를 통해서도 잘 알려진 국제시장을 방문했다.

 

 

40계단

 

40계단으로 향하기 위해 광복동에서 중앙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중앙역이라는 지하철역 앞으로 큰 도로가 보이는데 이 도로는 중앙로이다. 원래 지금의 중앙로까지는 바다였지만, 1902년 부산항 매축공사를 하여 중앙동 일원에 새로운 땅을 확보하고 이를 새마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앙로를 뒤로하고 40계단을 찾던 중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를 발견했다. ‘40계단 문화관광 테마거리50~60년대 어려웠던 시절의 생활상을 주제로 어머니의 마음’, ‘아버지의 휴식5개의 조형물과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의 문이 상징게이트로 구성되어 있다.

 




 

거리에 설치된 조형물들을 감상하며 걷다보니 ‘40계단 문화관이 저 멀리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 아래로 특이한 외형의 건축물이 보였다. 이는 소라계단이라고 하는데, 피난민을 실어 나르던 부산항을 상징하기 위해 바닷길이라는 주제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소라계단은 빙글빙글 돌아서 위로 향하는 나선형 구조였는데, 이 때문인지 한 층씩 올라갈 때마다 바깥 풍경이 전환되는 느낌이었다. 첫 바퀴에는 풍경이 가로수에 가려졌는데, 계속 오르다 보니 멀리 바다까지 보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바깥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꼭대기를 향해 계속 올랐다. 아래서 보았을 때는 계단이 높아 보이지 않았는데,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려니 꽤 걸었던 것 같다.

 








 

소라계단을 올라 40계단으로 향하는 길은 광복동 번화가와는 달리 아주 조용했고, 길 주변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건물들 사이로 요즘에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간판이 보였다. 간판은 오랜 시간을 견딘 탓인지 녹이 잔뜩 슬어있었는데, 낡은 흔적 속에서 중앙일보 광복 지국이라는 문구를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또 건물과 건물 사이로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틈에는 촘촘한 시멘트 계단이 보였다. 계단은 윗방향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는 또 다른 건물들이 보였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은 산 위까지 올라와 판잣집을 지어 살았다고 한다. 그 때의 흔적 때문이었는지, 건물들은 높은 고지대에 불규칙한 모습으로 지어져 있었으며, 좁은 계단을 통해 높은 건물산을 오르내릴 수 있었다.

 


 

건물들 사이로 용두산 공원의 부산 타워가 보이기 시작하자 40계단을 알리는 이정표를 발견했다. 이정표 아래로 내려다보니 40계단이 펼쳐졌다.

 



 

 

사실 오늘날의 40계단은 과거의 40계단과는 다르다. 40계단은 원래 폭이 4m 가량이었지만, 지금은 폭이 줄어 옛 모습을 잃은 상태이다. 그래서 본래의 40계단에서 남쪽으로 25m쯤 떨어져 있는 계단을 오늘날 40계단이라 일컫고 있다고 한다.

 




▲ 40계단 안내 팻말에 게재된 사진. 과거 40계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40계단은 오늘날의 영주동에서 옛 부산역과 국제 여객부두를 왕래하는 편의를 위해 설치되었다. 이 계단은 피난민들에게 가장 친근한 장소였다. 피난민들은 40계단을 통해 일터에 나가고, 식수를 기르며 살아갔다고 한다. 또 피난민들은 40계단에 기대 앉아 저 멀리 보이는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국제시장

 


 

국제시장은 부산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국제시장은 19458.15 광복으로 일본으로 돌아가던 일본인이 남긴 물건,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오는 한국 동포들의 물건을 교환하는 장터로 시작됐다고 한다이후 6.25 전쟁이 일어난 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미국산 물건들이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국가의 물건도 함께 취급하게 되어 국제 시장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국제시장은 피난민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곳이었다. 피난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토박이 상인들과 경쟁하며 이곳에서 노점상을 운영했다고 한다.

과거 생계유지를 위해 몰려들었던 국제시장은 지금도 많은 이들이 물건을 사고, 팔기 위해 모이는 시장이다. 요즘 전통시장들이 많이 조용해졌다고 하지만, 국제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띄고 있었다.

 


 

국제시장은 총 6공구/A, B동으로 구분되는 만큼 그 규모도 상당하다. 또 인테리어 소품, 화장품, 원단, 주방용품, 한복, 식품 등 취급하는 물품 종류도 많다.

 


 

시장 내부로 들어가니 상점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도록 나름 정리되어 있었지만 워낙 물건이 많다보니 쌓여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건 개수가 얼마나 많던지, 한 구역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듯했다.

 




 

끝이 희미하게 보이는 긴 통로 곳곳에 또 다른 골목들이 이어져 있었다. 골목 별로 파는 물건의 종류도 달랐는데, 덕분에 여러 골목을 다니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공구 상점들이 있는 골목에는 쉴 새 없이 기계 소리가 울렸고, 조명 상점이 있는 골목은 밝은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시장을 찾은 사람들 틈에서 손에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알다시피 국제시장은 천만 명이 넘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 <국제시장>으로 이제는 관광지로써도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한 국제시장 꽃분이네는 필수 사진 촬영 장소라고 한다. 이렇게 국제시장은 과거 역사적인 순간에서 지금까지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자, 이제는 관광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국제시장에는 기존 전통시장에서는 찾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바로 국제시장 609 청년몰이다. ‘국제시장 609 청년몰은 국제시장 6공구 B2층과 1공구 B2층에 자리해있는데, 이곳에는 독특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 국제시장의 빈 점포를 채우고 있다

 






 

추억이 떠오르는 빈티지한 카페와 근대 한국의 모습을 연출한 근대흑백사진관, 한지에 인쇄된 사진 등과 함께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들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인 국제시장 609 청년몰은 전통 시장의 기능과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여 국제시장의 활기를 더하고 있다.